1.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신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신 첫 번째 이유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이나 장난감처럼 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인 사랑 관계를 맺고 싶어 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선택권'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인간에게 선악과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할지 말지를 선택할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이고, 선악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행위라는 쉬운 조건을 주신 것입니다.
2. 선악과가 인간의 '한계'를 알게 하는 도구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아담은 왕, 제사장, 선지자라는 세 가지 중요한 직분을 모두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는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짓고 다스릴 수 있었고, 에덴 동산을 지키는 제사장 역할을 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루터는 아담이 죄 짓기 전에는 독수리보다 높이 뛰고 치타보다 빨랐을 것이라고 상상할 정도로 강하고 지혜로운 존재였습니다. 이처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이때 선악과는 "너는 이 과일을 먹으면 죽는 존재다. 너는 한계가 있는 피조물이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선악과는 인간이 창조주와 피조물을 명확히 구분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3. 선악과를 순종하지 않고 먹지 않았다면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창세기 2장 17절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반대로 해석하면,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 중앙에 선악과 외에 '생명나무'도 두셨습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일정 기간 동안 선악과를 먹지 않고 순종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순종을 '의로운 행위'로 여기시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하여 영원히 살게 하는 축복을 주셨을 것입니다. 선악과는 인간을 유혹하거나 악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하기 위한 놀라운 특권이었습니다.
4. 선악과를 먹으면 '선악을 알게 된다'는 구절에서 '알다'라는 히브리어 '야다'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야다'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경험을 통해 알다'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성경에서는 성관계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 본문에서 '야다'를 성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도 이미 성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은 후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성관계를 경험하여 안다는 의미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야다'를 성관계로 오용하여 자신들의 왜곡된 교리를 정당화하려 하지만, 이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5. 선악과를 먹고 나서 인간은 어떤 변화를 겪었나요?
선악과를 먹은 이후 인간은 '선악을 스스로 결정하는 도덕적 자율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악하다고 여기거나,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하시는 것을 선하다고 여기며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사기 21장 25절의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씀처럼,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자기 자신이 왕이 되어 자신의 기준과 소견대로 살아가는 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6. 예수님의 삶은 선악과를 먹은 인류와 어떻게 대조될 수 있나요?
인류는 선악과를 먹은 후 하나님의 결정과 원칙을 거부하고 자기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인류와는 다른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아셨고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지만, 결국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사시며, 인류에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7. 사랑하는 사람은 '종'이 되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노예 제도는 6년 후 자유를 얻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주인을 너무 사랑하여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종은 귀를 뚫어 영원히 그 주인의 종이 되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는 '사랑은 스스로의 자유를 억압하여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선악과를 먹을 자유, 즉 자신의 선악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이는 자신의 돈 쓸 자유를 포기하고 용돈 5만원만 받는 삶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포기하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메뉴를 먹는 것과 같이,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내려놓는 행위입니다.
8. 그리스도인은 선악과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선악과를 먹으며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울, 야고보, 베드로 등 모든 신앙 선배들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칭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여 스스로 종이 되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자유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시간, 좋아하는 것, 심지어는 자신의 욕망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내려놓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왕처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